SEARCH

검색창 닫기

인생 2막 20년 차 김재원 씨, “10년 뒤엔 80살 최고령 DJ가 될 것”

김재원 ‘음악의 숲’ 사장, LP음악 감상 취미가 인생 2막 업(業)이 되다

의류무역업에 종사하다 퇴사 후 의류 도매업하며 ‘음악의 숲’ 운영

인건비 등 맞춤복 제작에 어려움 있어 본격적으로 가게 운영 시작

가을이 무르익어가던 10월 중순 서울 약수역 ‘음악의 숲’에서 김재원 씨를 만났다./사진=정혜선


인생 2막이란 말이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은 시절, 누구보다 먼저 인생 2막을 활짝 연 분이 있다. LP 수집을 취미로 하다 LP바(Bar)를 연 김재원 음악의 숲 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가 LP바 DJ로 인생 2막을 산 지도 이제 20년이 다 돼간다. 그 사이 음악의 숲은 여러 우여곡절을 맞으며 세 번이나 이사했다. 인기도 얻었다. 8,000장이 넘는 LP로 가득 찬 벽면과 어두컴컴한 조명 사이로 보이는 추억의 가수들의 사진은 이곳의 매력을 알기에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음악의 숲은 영화 ‘써니’와 유명 방송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 등에 촬영 장소로도 활용됐다. 연인으로 손잡고 음악의 숲을 찾던 이들이 결혼해 아이와 함께 찾아주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20년 세월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음악이 좋아 시작한 일이지만, 스트레스로 지쳐 그만두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워준 것은 ‘음악의 숲’이란 공간을 사랑해준 단골손님들이었다. “앞으로 10년만 더 DJ를 하면 80세인데, 그땐 우리나라 최고령 DJ가 되지 않겠느냐”며 밝게 웃어 보인 김재원 씨를 가을의 문턱에 만났다.

- 반갑다. ‘음악의 숲’이 제법 유명하더라. 음악의 숲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음악의 숲, LP시대’는 내가 지은 이름이다. 나는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다. 우리 세대 중 그 시대의 음악을 그리워하고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 음악의 숲은 그런 분들이 찾아주는 공간이다.”

- 들어올 때 보니 한낮인데도 조명이 어둡더라. 조명을 어둡게 한 이유가 있나.

“옛날 음악다방이 대체로 이런 스타일이었다. 조명을 어둡게 해 음악에 집중하도록 한 거다. 1990년대 오면서 음악다방의 스타일이 변형돼 스크린을 설치해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우린 그 이전의 음악다방 모습이다.”

- 음악의 숲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 LP판을 사모았다.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3,000장이 넘는 LP판을 보관할 장소가 없더라. 몇 번을 버리려고 했는데, 좋아하고 아끼던 물건이라 그런지 쉽지 않더라. 그래서 작은 창고를 얻어 LP판을 보관했다. 거기에 소파와 작은 냉장고를 가져다 놓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나의 아지트였다(웃음).”

- 음악의 숲이 창고에서 시작됐다니 재미있다. ‘나만의 아지트’에 만족하지 않고 가게를 LP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친구들을 만나면 마지막은 꼭 그 창고로가 음악을 들었다. 그게 한 번, 두 번 이어지니까 친구들이 몰래 돈을 놓고 가더라. 가게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때쯤 창고 맞은편에 있던 옛날 다방 자리가 임대 매물로 나왔다. 한참을 지켜보다 그 자리에 ‘음악의 숲’을 열게 됐다.”

LP판이 진열된 벽면 맞은편엔 신청곡을 적어 넣는 바구니가 마련돼 있다./사진=정혜선


- 그때가 서울 을지로6가에 있을 땐가.

“맞다. 을지로6가 국립의료원 앞에 있었다. 음악의 숲이 시작된 곳이다. 큰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임대료가 저렴한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그 자리가 참 좋았다. 가게 운영을 시작하면서 LP판을 추가로 구매해 현재 8,000정이 넘는다.”

- 장사는 잘됐나.

“잘 안 됐다(웃음). 창고에서 친구들끼리 모여 음악을 듣다 사업을 시작한터라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본 것은 있어서 이것저것 가져다 놨는데, 손님이 오면 떨리더라. 주문은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서빙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막 가게 문을 열었을 땐 손님도 없었다. 그러다 3년쯤 지나니까 알려져 찾아오는 사람이 차츰 늘었다. 2002년 월드컵 땐 거기서 밤새 술을 마시기도 했다(웃음)”

- 인생2막이란 말이 생기기 전에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당시 1막을 접고 2막을 시작할 때 마음가짐이 어땠나.

“해본 적 없는 사업을 시작했으니 막막하고 서글펐다. 그런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고 나아지더라. 그리고 차츰 손님을 맞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 뭐든 새로 시작할 땐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 애정이 깃든 공간을 사람들이 찾아와 줄 때 기분이 어땠나.

“당연히 기분이 좋다. 음악의 숲을 20년 정도 운영하다 보니 처음부터 찾아오던 골수 단골이 생겼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때 되면 한 번씩 찾아주는 이들도 있다. 내가 음악의 숲을 처음 시작했을 때 4050세대였던 분들이 지금은 6070세대가 됐다. 손님과 같이 늙어가다 보니 어떨 땐 선물을 들고 찾아오는 분도 있다. 그럼 20년이란 세월의 보람을 느낀다.”

- 어렵게 자리를 잡았는데, 을지로를 떠난 이유가 있나.

“당시 손님이 참 많았는데, 하루는 건물 주인이 찾아왔다. 본인이 직접 가게를 내 운영하려하니 나가달라고 하더라. 전세 자금을 올려주겠다고 했는데도 나가라고 하더라. 거기서 몇 달을 더 하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부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 이곳엔 언제 오게 됐나.

“아무래도 지난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 건물 전체 리모델링을 할 예정이라고 나가 달라고 하더라. 또 옮길 생각하니 막막했다. 이대로 음악의 숲 운영을 그만둘까도 고민했다.”

-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거라 즐거울 것 같은데, 그만두려고 했던 이유가 있나.

“음악의 숲을 10년쯤 운영했을 때가 고비였다. 당시에는 손님이 너무 많아 2, 3호점을 냈다. 음악의 숲은 신청곡을 받아 운영되는데, 손님이 많다 보니 신청곡이 30~40곡씩 밀려있었다. 그럴 때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신청곡이 나오지 않아 컴플레인을 거는 손님과 비트가 빠른 음악을 틀었을 때 시끄러우니 꺼달라는 손님 등 정말 다양한 손님이 있었다. 매일 음악을 틀면서도 마음이 지치더라.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인생 2막의 위기를 지나 절정을 살고 있은 김재원 씨는 초심으로 돌아가 웃으며 손님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사진=정혜선


- 결정적으로 음악의 숲을 그만두지 않고, 이곳 약숭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단골이 있다. 때 되면 찾아오는 분인데, 한번은 우연히 아파트 단지에서 만나 근황을 이야기하게 됐다. 이래저래 해서 음악의 숲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하니, 약수역에 좋은 자리가 있다고 보러 가자고 하더라. 알고 보니 그분이 부동산 중개업을 했다. 그분 덕에 지금의 자리를 얻어 새롭게 터를 잡았다. 여기로 옮기면서 초심으로 돌아가게 됐다. 코로나19로 손님도 많이 준 데다 가게 규모도 작아져 정말 예전 창고 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덕분에 지금은 손님 얼굴을 보면서 웃으며 음악을 틀 수 있게 됐다.”

- 음악의 숲을 열기 전에도 음악 관련 일을 했었나.

“아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해 무역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의류무역업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의류무역업이 국내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등 해외로 철수했다. 국내 의류무역산업이 어려워지니까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 그만두고 바로 음악의 숲을 시작한 건가.

“회사를 그만둘 즈음이 2000년도니까 당시엔 창고에서 음악을 들을 때다. 회사를 그만두고는 동대문에서 의류도매업을 시작했다. 당시엔 동대문이 두타, 밀레오레 등이 생기면서 시장이 컸다.”

- 의류도매업은 잘됐나.

“처음에는 가지고 있는 옷이 많으니까, 그 옷들을 처분하려고 도매업을 시작했다. 우연히 개그프로그램인 웃찾사의 코디들이 찾아와 옷 제작이 필요한데,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하더라. 그렇게 개그맨들이 입을 옷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이 일도 오래 하진 못했다. 일단 대량 생산이 아니다 보니 단가를 맞추기 어려웠다. 게다가 요구사항에 맞지 않으면 수정이 많아 손이 많이 갔다. 당시 낮엔 동대문에서 옷 제작하며 일하고, 밤엔 음악의 숲에서 일했다. 5년 정도 하다 그만두고 음악의 숲에 전념했다.”

- 다른 일을 할 때도 음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놓지 않았던 듯하다. 김재원 씨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그야말로 취미로 했다가 업이 됐다. 여기에선 손님들이 신청한 음악을 틀지만, 집에 가선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나는 음악이 곧 생활이다. 신청곡이 없을 땐 그날 분위기에 맞게 음악을 틀곤 한다. 그럼 음악과 분위기에 취한 손님이 춤을 출 때도 있다. 그런 모습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 본인의 인생 2막을 평가한다면.

“인생 2막이라...사실 지금은 고비를 넘긴 듯하다. 그러고 나니 앞으론 너무 힘들지 않게 가보자는 생각이다. 앞으로 10년 뒷면 80살에 가까워지는데, 내가 알기론 80살 음악 DJ가 없다. 그럼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은 DJ가 되는 거다. 그때까지 해보자는 게 지금의 마음이다.”

- 인생 2막의 위기를 지나 절정을 살고 있는 듯 한데, 남은 꿈이 있다면.

“지금 이곳에 단골로 오던 분이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LP판이 어디있고, 어떻게 판을 끼워 음악을 트는지 등 DJ하는 법을 배운다. 이렇게 이 일을 배우고 싶다는 분이 있으면 무료로 노하우를 다 전수하고 싶다. 앞으론 그런 일을 하며 살려고 한다. 한 번은 서울시 문화유산 관장이 찾아와 나중에 서울시 문화유산으로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더라. 좋다고 했다. 그렇게 가진 것 아는 것 다 나눠주며 사는 게 남은 꿈이다.”
정혜선 기자
doer0125@sedaily.com
< 저작권자 ⓒ 라이프점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메일보내기

팝업창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