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으로 온몸의 체중을 받치고 서서 공중으로 도약하는 춤. 음악에 맞춰 흐르듯, 어떨 때는 힘차게. 유연성에 힘까지 필요한 춤 발레. 통상 10~12살에 시작해 20~30대에 커리어 정점을 찍고, 40세가 되기 전에 은퇴하는 게 정설로 여겨지는 발레는 중년의 취미로는 언뜻 멀어 보인다. 하지만 하늘하늘한 발레 스커트를 입고, 우아한 몸짓으로 춤을 추고 싶은 건 중년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발레도 중년의 취미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들이 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뉴욕발레아트학원의 박경희(52) 원장과 “이제껏 발레만큼 좋은 취미는 못 찾았다”는 박민경(46)씨다.
14살의 박 원장은 학교 복도를 걷다 우연히 발레하는 소녀들을 마주했다.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본 발레극 ‘분홍신’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단정하게 쪽 찐 머리에 분홍 토슈즈를 신고, 음악에 맞춰 나풀거리는 모습은 단박에 그를 사로잡았다. 담당 선생님에게 찾아가 “무용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무용수의 길을 걷게 된 그는 한양대 무용학을 졸업하고, ‘한국 1세대 발레리노’라고 불리는 고 이상만씨로부터 그가 창단한 ‘리발레단(LEE Ballet)’ 입단 제의를 받아 10년간 활동했다. 37살에는 뉴욕으로 떠났다. 2년 동안 뉴욕의 발레 교습소를 옮겨 다니며, 새로운 스타일의 발레를 탐구했다. 39살에 귀국하고선 서울 은평구에 발레 학원을 차렸다.
“예전보다는 취미 발레가 대중화됐지만 아직도 발레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요. 누구나 할 수 있거든요. 또 ‘미(美)’에만 치우치는 점도 안타까워요.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데 동작만 배우다가 다치는 사례도 많아요. 예를 들면 발목이 약한데 앙 포앵트(en pointe·발 끝으로 서는 발레 동작)를 배우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지요.”
그는 입시를 위한 작품반은 물론, 리발레단과 뉴욕에서 배웠던 창작 발레에서 영감을 받아 발레 동작을 기반으로 해 근력을 강화하고 체형을 교정할 수 있는 ‘교정 발레’를 만들었다. 그 수업의 문을 두드린 게 박민경씨다. 팝핀, 방송댄스, 댄스스포츠, 태권도 등 ‘몸을 써서 움직이는 운동’이라면 뭐든지 도전했던 그는 동네에 새로 생긴 발레 학원에 흥미가 갔다. 취미로 시작한 발레가 올해로 무려 13년 차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일주일에 최소 4일은 발레 학원에 참석할 정도로 열성이다.
“발레, 근력 강화와 자세·체형 교정하는데 큰 도움”
박민경씨가 말하는 발레의 장점은 ‘체형과 자세 교정’이다. 171㎝의 큰 키는 어릴 적 숨기고 싶은 콤플렉스였다. 몸집이 작아 보이기 위해 움츠리다 보니 잘못된 자세가 몸에 익었다.
“발레는 꼿꼿하게 서서 하는 동작이 많잖아요. 발레를 한 3개월 배웠을 때였나. 사람들이 자세가 좋아졌다고, 달라 보인다고 칭찬하더라고요. 길게 뻗어서 하는 동작이 많아 몸의 선도 예뻐지지요.”
다른 운동에서는 잘 쓰지 않는 근육을 쓴다는 것도 발레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다리를 뒤로 길게 쭉 뻗어내는 동작이 있는 운동은 발레 말고는 없잖아요. 이렇게 다른 운동에서는 쓰지 않는 근육을 활용한다는 게 발레의 또 다른 장점이지요.”
수업을 듣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발레는 정적이라 운동이 안된다’, ‘몸이 유연하지 않은 중년은 할 수 없는 운동이다’라는 의견도 모두 선입견이라고 말했다.
“50대에 발레를 시작한 동료 수강생들도 많아요. 왜 이제 시작했는지 아쉽다며 환갑, 칠순까지 할 거라고 말해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도전해 보세요.”
박민경씨와 함께 발레 수업을 듣는 30대의 김현지도 ‘발레하는 4050이 더 많이 보이면 좋겠다’고 덧붙여 말했다.
“호기심에 발레 학원에 들어와 봤는데 평범한 4050이 발레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발레는 마르고, 어려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저도 배우기를 망설였을 것 같아요. 또 발레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운동이잖아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언니들을 보면서 더 많은 4050이 발레를 통해 자신감과 자존감을 챙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중장년에게 추천하는 스트레칭
발레는 관절의 가동 범위를 늘리고, 근육과 인대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본격적인 운동 전 스트레칭이 필수다. 박 원장은 수강생들에게 발레리나(노)들이 즐겨하는 스트레칭을 전수하는데, 근력이 길러지고 잘못된 자세가 교정돼 ‘스트레칭만으로도 삶의 질이 달라졌다’는 후기가 종종 들어온다. 말린 어깨와 무지외반증, 무릎 통증 등 4050이 가진 만성 통증을 줄여줄 수 있는 스트레칭을 전한다.
- 정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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