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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이 계속되는 이유 "아이에게 일은 멋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죠"

[라이프점프-루트임팩트 공동기획] 내일의 내:일 11.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내 일

김우정 씨닷 매니저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유? 딸아이에게 멋진 엄마여야 하니까"


통계청에 따르면 임신과 출산, 육아 및 가족 돌봄 등을 이유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의 수는 2019년 기준 169만명에 달한다. 놀랍게도 이 중 구직 의사가 전혀 없는 경우는 0.6%에 그친다. 99%가 넘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다시 일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모 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엄마라는 경력이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현실 속에 이들의 다양한 전문성과 잠재력은 사회와 무관하거나 동떨어져있다고 치부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단녀’라는 세 글자에 갇힌 편견을 깨고 작지만 커다란 성장을 일궈내는 이들이 있다.

‘내일의 내:일’은 일터 밖에서 보낸 시간을 경력단절이 아닌 ‘경력보유’라는 이름으로 재정의하고, 스스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다시 누군가의 동료로 돌아온 여성들의 성장 이야기이다.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것으로 간절히 내 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건네고자 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 세상을 수선하는 일에 책임감을 느낀다. 세상에 친절과 관대함이 부족하다면 내가 더 친절해져서 친절의 총량을 올려볼까 한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시간을 보내며 이전과는 완연히 달라진 일상과 성장을 기록한 에세이 「거의 정반대의 행복」 속 저자의 다짐이다. ‘내일의 내:일’ 열 한번째 인터뷰의 주인공 역시 자라나는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꿀 수 있도록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그려왔다. 그리고 지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기회와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혁신 조직 ‘씨닷’에서 일하고 있는 김우정 매니저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났다.

김우정 씨닷 매니저


-우정님은 비교적 경력 공백의 시간을 길게 보낸 편이죠. 그 시간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네, 저는 약 7년 정도 육아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이전 커리어가 마케팅 분야였어서인지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었지만, 육아를 하는 동안에는 기사 하나 주의깊게 들여다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꾸역꾸역 시간을 만들어 사회적, 경제적 이슈에 관심을 쏟기에는 다시 회사로 복귀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기에 동기부여가 안 되기도 했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회와 벽이 생겼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모든 세포가 아이에게만 집중돼 저라는 사람은 사라진 채, 사회와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그럼 우정님은 처음부터 일을 다시 할 계획이 없었던 건가요?

“그런 건 아니에요. 이상하게 제가 복귀하려고 할 때마다 아이가 병원에 갈 일이 생기더라고요. 처음에는 회사에서도 이런 저런 배려를 해주셨는데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제 마음이 편치 않아 결국 그만두게 되었어요. 저희 어머니 세대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모습에 워낙 익숙해서인지, 저 혼자 괜한 욕심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아이가 좀 크고 난 후에도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와 보내는 시간과 바꿀만큼 가치있는 일인가?’ 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자신이 없었어요. 딱 한 번 욕심내었던 회사가 있었는데 최종 면접에서 불발됐어요.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둘째 임신의 가능성이 채용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죠. 자연스럽게 사회적 통념을 받아들이고 육아가 제 인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계기였어요.”

-일터에서 우정님을 만난 저로서는 지금의 모습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이렇게 되기까지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겠죠?

“꿈, 자아실현, 이런 요소들이 모두 중요하지만 역시 가장 확실한 동력은 경제적 이유 아닐까 싶네요. (웃음) 그리고 지난번 지혜님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처럼 사회와의 연결이 커리어 복귀에 도움을 주는 정말 중요한 요소에요. 저 역시 예전 동료 분의 요청으로 일을 다시 손에 잡을 기회가 생겼거든요. 프로젝트에 일손이 부족할 때면 짧게 짧게 아르바이트처럼 도움을 드리는 방식이었어요. 아이를 재워놓고 밤새 보고서 작업을 하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는데 결정적으로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 동안 일 감각이 얼마나 무뎌졌는지 깨닫는 것이 속상하면서도, 요즘의 트렌드를 찾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즐거움이 컸고, 최종 결과물이 나왔을 때의 성취감이 너무 좋았기에 다시 일하고 싶은 저의 욕망을 깨달은 거죠.

이후 소셜섹터와 소셜벤처에 대해 알게 되면서 특유의 젊고,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느낌이 좋았어요. 앞으로 사회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잠재력을 갖고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특히 다음 세대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의미있는 연결의 장을 만드는 씨닷의 미션에 깊이 공감했고, 저도 그 일에 함께 하고 싶었어요.

짬짬이 일을 경험했지만 한 조직의 구성원이 돼 7년이라는 시간을 메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과 업무 현장에서 제 손이 움직이는 것은 다르더라고요. 새로운 분야였기 때문에 저의 지식과 경험, 사고 방식이 너무 상업적이거나 현재의 맥락과 동떨어진 것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있었고요. 이러한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회사 밖에서도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하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했어요. 결정적으로 작년에 행사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고 운영하는 경험을 통해 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요. 물론 여전히 새로운 일 앞에서의 두려움이 있지만, 예전처럼 불안해하지 않고 뛰어들 수 있어요.“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올해는 코로나라는 또 다른 변수가 생겼잖아요. 요즘 우정 님의 일과 육아 모두 안녕한가요?

“이미 언론에서도 많이 이야기하고 있듯이 그야말로 비상사태가 맞아요. 한두달이면 괜찮아지겠거니 생각했는데 끝이 안 보이네요. 저희 회사는 계속 재택을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와 한 공간에 있으면서 일에 몰입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화상 회의를 하는 도중에도 온라인 수업과 숙제, 식사 등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일과 육아 어느 쪽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아마 제가 경력 공백을 경험하지 않고 계속 일을 해왔던 사람이라면, 지금쯤 포기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시기를 지나봤기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확실해요. 현재의 조직에 적응하고 일의 감각을 회복하기까지 약 2년의 시간이 걸렸다면, 다시 돌아올 때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요.”

-몸도 마음도 분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여유로움이 느껴지네요. 마지막으로 우정님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우선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 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며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모두 살려 저만의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죠. 사회에 긍정적인 임팩트를 내면서 이윤도 많이 창출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웃음)”

“앞으로 아이는 삶 속에 일이 있다는 것을 배워나갈 것이다. 아이에게 일이란 멋진 것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부분적으로는 일하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전체적으로는 즐거워서 하는 것,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인상은 주고 싶지 않다.”

앞서 소개한 에세이에서 저자가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언젠가 우정님이 끝까지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어린 딸을 꼽은 일이 생각났다. 우정님이 기꺼이 버텨내는 오늘의 시간이 쌓여, 우정님의 딸이 그만의 일을 갖게 될 때에는 어떤 이유로든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늘 진심을 담아 일하는 우정님이 지금의 나에게 그러하듯, 앞으로 그의 딸을 비롯한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 닮고 싶은 멋진 선배의 모습일 것이라 확신한다.

루트임팩트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를 일과 삶, 배움의 분야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경력보유여성이 일터로 돌아와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연한 일자리를 설계하는 ‘임팩트커리어W’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여러 체인지메이커 조직들과 함께 여성의 지속가능한 일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송예리 루트임팩트 매니저
박해욱 기자
spook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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