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교육자원봉사지원센터. 1층 교실로 들어서니 과학 수업이 한창이다. “선생님, 그럼 빅뱅으로 우주가 생긴 거지요?” 열정적으로 질문하는 학생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70대 어르신. 이곳 서울상록하이스쿨은 경제적 여건 등으로 일반 고교에 진학하지 못한 방송통신고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제공하는 학습지원학교다. 국어, 수학, 과학 등 주요 과목을 교과서 중심으로 요점 정리해 설명하고, 방송고의 온라인 수업 이해를 돕는 무료 수업이 진행된다.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현직 교사가 아니다. 정년퇴직 후 교단으로 돌아온 퇴직 교사다. 수십 년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이들이 다시 교단에 섰다. 이제는 돈을 받고 일하는 교사가 아닌, 나눔의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지식을 나누는 ‘상록하이스쿨봉사단’으로 이 자리에 있다.
이처럼 다양한 퇴직 공무원들이 제2의 인생에서 ‘교육 봉사’를 택하고 있다.
퇴직 공무원들이 사회봉사를 위해 뭉친 상록자원봉사단에는 어르신 등을 대상으로 교육 봉사를 하는 상록하이스쿨봉사단을 비롯해 아동들의 교육 지도에 도움을 주는 느린학습아동멘토링상록봉사단,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힘 쏟는 늘봄상록봉사단 등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라이프점프는 학생들의 곁으로 돌아간 이들이 어떻게 교육의 빈틈을 채우고, 학생들을 돕고 있는 지를 들어봤다.
정진 상록하이스쿨봉사단장
정진(79) 상록하이스쿨봉사단장은 서울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2006년 정년을 맞았다. 퇴직 전에는 업무에 치여 인생 이모작에 관해 고민할 겨를도 없었던 그는 퇴직 후 긴 휴식을 기대했다. 하지만 퇴직 후 6개월이 지나자 그에게도 무료함이 찾아왔다.
“재정·건강·고독·무료함. 은퇴자들이 흔히 겪는 네 가지 고민 중 무료함이 제일 먼저 찾아오더라고요.”
정 단장은 무료함을 해결하고 제 2의 인생을 채워가고자 한 지자체의 청소년수련관장으로 2011년까지 일했다. 그러다 우연히 찾은 인생이모작센터에서 새롭게 눈이 뜨였다. 다양한 강의 중 사회공헌과 재능 나눔 강의가 그의 흥미를 끈 것. 그는 강의를 계기로 사회에 환원하는 삶의 가치와 봉사활동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쳤다. 이후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교육 봉사를 하고 평생학습관에서는 어르신들께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며 점차 교육 봉사에 매료됐다. 그렇게 6년간 교육 봉사를 이어가던 중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
“평생학습관 어르신들이 중학교 과정을 수료한 뒤 ‘고등학교에도 가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방송통신고 온라인 수업 과정을 독학으로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정 단장은 직접 어르신들께 고등 교육 과정을 요점 정리해 지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각 과목을 맡을 퇴직 교원부터 찾아나섰다. 고등 교육 과정을 지도할 수 있는 퇴직 교사들이 자원봉사 형태로 수업을 진행하고 행정직 출신인 정 씨는 학교 운영을 도맡았다. 이후 공무원연금공단의 도움으로 교실을 제공 받으며 차츰 운영 체계를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2018년 상록하이스쿨이 탄생했다.
“행정 공무원으로 일했던 경험이 여기서 큰 도움이 됩니다. 어느 기관에, 어떤 방식으로 요청하면 문제가 해결될지 아는 감이 있거든요.”
정 단장은 올해로 8년째 각종 행정, 운영 업무와 교사, 학생의 소통을 맡고 있다. 상록하이스쿨의 교장 선생님인 셈이다.
그는 봉사를 하며 얻은 가장 큰 자산이 사람이라고 말한다. 퇴직 교원들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 공헌이라는 목표를 위해 함께하는 과정이 그에게는 가장 큰 자산이자 제 2의 인생 그 자체다.
김영풍 느린학습아동멘토링상록봉사단장
김영풍(71) 느린학습아동멘토링상록봉사단장은 1981년 처음 교단에 섰다. 중등교사로 38년간 근무한 그는 2018년 2월 정년 퇴임 후 제2의 인생을 고민했다. 주변의 조언을 듣고 공인중개사 등 전문직 자격증 취득도 생각해 봤고, 궁궐 해설가 일도 제안 받았지만 끌리는 일은 없었다.
“아이들을 지도했던 노하우를 활용하고, 다시 한번 교육계에 뛰어들어 ‘교육 인생 이모작’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평생을 교육에 종사했지만 퇴직 후에도 김 단장은 교육에 마음이 기울었다. 그저 학생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았다. 이에 2020년 교육인생이모작센터에서 기초학력아동지도 봉사를 시작했다. 다문화, 결손가정, 혹은 형편이 어려워 학교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을 지도하는 봉사다.
그의 교육 봉사 인생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이들과미래재단의 ‘천천히 함께’ 봉사단 등 다양한 아동 멘토링 봉사 단체에서 기초학력 아동을 지도하며 2년간 아이들의 멘토로 활동했다.
2024년 공무원연금공단과 아이들과미래재단이 협약을 맺고 ‘느린학습아동멘토링상록봉사단’을 발족했다. 그는 공단의 추천으로 봉사단장을 맡았다. 봉사단은 공직과 교직 경력을 함께 가진 퇴직 공무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 150여 명의 멘토와 멘티가 활동 중이다. 그는 이들의 중심에서 실질적인 교육 봉사를 이끌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일종의 소명 의식입니다. 약간의 보수를 위해 이 일을 하는 사람보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위하는 사람이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일을 시작할 때 경제적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이 아이들의 눈빛을 다시 보면 ‘이 길이 맞다’는 확신이 들어요.”
그는 아이들을 지도하며 서서히 변화를 감지했다. 글을 읽지 못하던 아이가 책을 읽기 시작하고, 사회와 단절됐던 아이가 또래와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보람을 느낀다. 그는 말한다. 퇴직 이후 ‘나’만을 위해 살아보고 싶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결국 ‘누군가를 위한 시간’이 가장 깊은 울림을 남겼다고.
“선생님은 대단한 직업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입니다. 지금 가르치는 이 아이들이 30~40년 뒤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때 나를 믿어준 선생님’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최덕호 늘봄상록봉사단장
늘봄상록봉사단은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하며 등하교 동선을 체크하고, 안전 관리에 힘쓰는 봉사단이다. 그 중심에서 최덕호(72) 단장은 봉사자 조직 운영과 배치, 교육 등을 총괄한다.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국가 덕분에 살아왔기 때문에, 임기 중에도 늘 은퇴 후에 제가 얻은 걸 사회에 환원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40년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최 단장은 2016년 정년 퇴임 후 동료의 권유로 상록자원봉사단에 입단했다.
그가 처음부터 늘봄상록봉사단으로 활동한 건 아니다. 공무원연금공단의 시니어기자단이 시작이었다. 최 단장은 7~8년간 상록자원봉사단의 봉사 현장을 찾아다니며 기자단으로 일하고, 현장의 봉사 일손을 도왔다. 그렇게 그는 상록자원봉사단에서 잔뼈가 굵은 봉사자로 자리 잡았다. 함께했던 봉사자들과 공무원연금공단 모두 그의 열정을 인정했다. 그리고 2024년 늘봄상록봉사단장으로 위촉됐다.
그는 단장으로 위촉된 뒤 체계적인 봉사단 운영을 위해 서울 전역에 11개 지부를 두고 지단장을 발족했으며, 이들을 통해 현장을 관리한다.
“학생들을 안전하게 인솔하고, 학부모로부터 교사에게 아이를 안전하게 넘겨주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하는 일의 핵심입니다.”
그는 봉사자의 역할이 단순히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안전’이라는 교육의 기본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등하교 동선 점검, 학습 공간으로의 이동 동행, 현장 지원 등 자원봉사자의 활동은 아이들의 하루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탱하는 역할이다.
최 단장은 봉사자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봉사자들에게 아이들을 세심히 관찰하고, 잠재 능력을 찾아주라고 말한다.
“아이들을 현재 모습 그대로만 보면 그 자리에서 멈춥니다. 그러나 가능성을 인정해 주면 그만큼 자란다는 걸 현장에서 자주 확인하게 됩니다.”
그가 말하는 봉사의 본질은 아이들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단순한 돌봄이 아닌,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는 것이 자원봉사자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은퇴는 끝이 아닙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지금이 오히려 제 인생의 연속이라고 느낍니다. 이제는 제 삶의 무대가 바뀌었을 뿐, 본질은 같지요.”
- 이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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