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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후 시작한 전원생활, 노후 생활비 걱정 던 비결은?

■ 귀촌 후 숙소 운영하는 오영수·김신영씨 부부

은퇴 4년 전 마련한 인제 집으로 부부가 귀촌

숙소로 공유한 황토 찜질방 인기에 수익도 ‘제법’

“이웃을 내 가족처럼, 과거 내려놓고 겸손하게”

강원 인제군에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는 김신영(왼쪽), 오영수씨 부부. 본인 제공


“은퇴 전부터 계획해 온 전원생활, 완벽히 적응해서 감사한 행복을 누리고 있죠.”

번잡한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길어진 노후를 감당할 생활비를 벌 수단을 찾는 일도 과제로 다가온다. 강원 인제군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오영수(69)씨는 찜질방이 딸린 황토 주택을 지어 살면서 공유 숙소를 운영해 경제적 안정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한다.

오씨의 직전 직업은 교사였다. 지난 2017년 정년퇴직을 맞을 때까지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장이었다고. 그는 은퇴 전부터 어디에서, 어떤 집에서 살지 차근차근 계획한 끝에 그림 같은 집에서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도심에서 멀어 불편한 점도 있지만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평화롭다는 오씨다.

“시골 생활은 불편한 천국, 도시에서의 삶은 편리한 지옥이죠.”

오씨 전원주택의 앞마당. 본인 제공

젊은 시절부터 그려온 귀농의 꿈의 실현


오씨의 전원생활 계획은 교직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9세에 처음 발령 받은 학교에서 만난 김신영(63)씨와 결혼한 후 장학사에 합격해 교감과 교장으로 교직 생활을 이어왔다. 세 아이가 생겼고 방학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강원도를 찾아 종종 캠핑을 즐겼다. 그럴 때마다 오씨 부부는 “노후에는 이런 곳으로 와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청사진도 차근차근 그리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인제군에 집을 마련해 주말마다 들러 가꿔왔다.

그러나 귀농 시기가 고민이었다. 서울에서의 삶에 피로감을 느껴왔던 터라 퇴직 후 바로 전원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던 오씨. 하지만 그가 퇴직을 할 무렵 그의 아내는 아직 현직에 있었다. 한동안 주말부부로 지내야만 할 상황이었는데, 아내가 결단을 내렸다. 교직을 내려놓고 남편을 따라 인제에서 새 삶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관상동맥에 스텐트 시술을 받은 오 씨를 혼자 시골로 보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제가 나이가 많으니 걱정이 된다고 따라와 준 거죠. 학교에 남았다면 교장으로 은퇴를 할 수도 있을 텐데 저를 위해 다 내려놓고 와준 것이 항상 고맙고 미안합니다.”

오 씨가 운영하는 숙소 ‘쉬느’를 찾은 숙박객의 모습. 에어비앤비

부부를 위한 황토주택, 에어비앤비에서 인기 숙소 등극


오씨는 전원주택 두 채와 텃밭을 가꾸며 지내고 있다. 한 채는 은퇴 전 인수해 개조한 것. 나머지 한 채는 전원생활 중에 새롭게 지은 황토 주택으로 개인 찜질방을 조성해놨다. 집이 두 채가 되면서 한 채는 비워두는 일이 잦아졌다. 오씨 조카는 “에어비앤비에 올려 펜션처럼 운영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젊은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플랫폼에서 황토 찜질방이 딸린 전원주택에 관심을 가질 리가 있을까’ 의심이 갔지만 기우였다. 현재 오씨의 황토 주택은 에어비앤비의 인기 숙소로 꼽힌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쉬느’를 검색하면 묵었던 숙박객들의 블로그 게시물에 칭찬이 자자하다. “나이 든 저희 내외가 지내려고 마련한 집인데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찾아주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펜션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가 폐업하는 요즘, 몇 년째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쉬느’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오씨는 ‘쉬느’의 인기의 비결로 차별화된 정체성과 인테리어를 꼽았다. 황토 찜질방의 인기는 코로나19가 계기였다. 전염병에 관한 사회적 우려가 높을 때 대중 사우나 시설을 꺼리는 이들은 가족끼리 즐길 수 있는 개인 찜질방이 대안이 됐다. 집합 제한이 풀린 후에도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오씨의 숙소는 꾸준히 즐겨 찾는 곳으로 남았다.

오씨가 공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본인 제공


사진을 찍을 곳이 많은 점도 쉬느의 인기 비결이다. 오씨 내외가 부지런히 가꾸는 정원은 봄, 여름엔 다양한 꽃이 핀다. 한옥 풍의 창틀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숙박객들 사이에서 사진 촬영 명소로 불리는 쉬느의 창문은 한옥의 멋이 느껴지는 창틀과 그 안에 담기는 인제의 푸른 하늘이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인상을 준다고. 임신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온 이들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독특한 형태의 창틀에 어디서 공수해 온 것인지 물으니 직접 만든 작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창틀뿐 아니라 집안 곳곳의 가구들은 오씨의 손을 거친 작품이라고. 안방에 놓여 있는 화장대도 오씨가 아내를 위해 직접 만들었다. 퇴직 후 전원 생활을 준비하며 한옥학교에서 간단한 목공을 배운 덕이다. 매일 출근을 하던 사람이 쉬게 되면 허전함이 클 것 같아 다닌 한옥학교인데 지금은 주택 뒤편에 공방을 마련해 둘 정도로 중요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오씨 부부가 직접 재배한 고구마. 본인 제공

성공적 귀농의 열쇠: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


‘쉬느’의 인기가 높아지며 경제적으로 큰 보탬이 됐지만 사실 오 씨 부부의 관심사는 돈벌이가 아니다. 한 해를 꼬박 들여 키운 작물들은 부부가 먹을 것을 제하고 모두 지역 주민에게 나눈다. 수확량의 90%가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직접 담근 김치와 된장도 절반 이상이 이웃들의 몫이다. 쉬느의 황토 찜질방도 몸이 아픈 이웃들에게는 어떠한 사례 없이 선 뜻 불을 지펴 내준다. 하룻밤 지지고 나니 쑤시던 곳이 확 풀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보다도 값진 답례가 없다고.

“내로라하는 재벌이라고 해도 하루에 다섯 끼 이상은 못 먹지 않습니까? 나이가 드니 돈을 버는 것보다도 나눔이 주는 행복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텃밭을 가꾸는 오씨의 모습. 본인 제공


오씨는 이처럼 이웃을 내 가족처럼 대하는 것도 성공적인 귀농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은퇴 전부터 가족끼리 이곳으로 캠핑을 오며 지역 주민들과 안면을 트고 관계를 형성해온 것이 지역에 적응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오 씨는 귀농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귀농 10년 전부터 살 곳을 정하고 그 지역에 서서히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 곳으로 귀농한 사람 중에서도 대기업 간부, 전문직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왔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은퇴 전에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새 터전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만큼 과거의 삶을 모두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이웃을 대하고 지역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지현 기자
claris@rn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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