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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프라브 공연 통해 경쟁 사회 아닌 함께 가는 문화 만들고 싶어”

■ 박형근 판타스틱씨어터 대표

30년 금융인 생활 마친 뒤 소극장 열어

코로나19로 공연 중단하고 대관에 매진

인생 2막 꿈 퇴색되는 느낌에 위드코로나와 함께 공연 다시 시작

박형근 판타스틱씨어터 대표/사진=정혜선


“은퇴는 일생 받은 생일 선물 중 최고의 선물이다.”

박형근 판타스틱씨어터 대표가 은퇴 한 날 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이었던 그날을 잊을 수 없는 건 생일이어서만은 아니다. 30여 년간 입고 있던 금융인이란 옷을 벗고 인생 2막의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기대감이 컸다.

박 대표는 은퇴 후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2016년 2월 서울 용산구에 소극장을 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선택한 인생 2막의 삶은 극장 대표이자 연극배우였다. 느닷없는 선택은 아니었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시절 선생님의 권유로 학교 연극반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대학교에선 음악에 빠져 음악을 전공하려 했으나 부모님의 권유로 경제를 전공해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불리는 미국의 월스트리트로 진출했다.

물론 그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트레이더로서의 삶 역시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다만 인생 2막엔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고 싶었다”고 했다. 판타스틱씨어터에서 판타스틱한 인생 2막을 펼쳐 나가고 있는 박형근 대표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만나서 반갑다. 근황 토크로 인터뷰를 시작하려 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코로나19 이후 변화가 많았다. 거기에 적응하면서 지내고 있다.”

-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은퇴 후 고민 끝에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앞에 지금의 판타스틱씨어터 절반 정도 크기의 소극장을 열었다. 3년 정도 그곳에서 있었는데 참 잘됐다. 그러다 지금의 장소로 옮겼는데, 딱 6개월 후 코로나19가 터졌다. 초기에 어려움을 겪으면 빠른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공연을 중단하고 비즈니스모델을 대관으로 바꿨다.”

- 현명한 선택이었던 같은데, 어떤가.

“맞다. 예상이 적중했다. 비대면 방송이 많아지면서 대관이 생각 보다 잘돼 큰 손실 없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이곳에서 가수 제시의 쇼터브를 비롯해, 가수 윤도현, 랩퍼 영지 등이 대관해 촬영했다.”

- 대관으로 비즈니스모델을 전향해 큰 손실은 없었지만, 고민은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 한 1년을 판타스틱씨어터 관리인으로 살았다(웃음). 그렇게 혼자서 청소하고 정리하며 대관 일을 보다 어느 날인가 자신에게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묻게 됐다. 5년 전 이일을 시작할 때는 분명히 뚜렷한 목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퇴색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 5년 전 극장을 열었을 때, 하고자 했던 일이 궁금하다.

“금융기관에서 30년 동안 일하며 인생 1막을 마무리 지었다. 그것을 하나의 이야기라 한다면 해피엔딩인셈이다.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2막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통해 사람들이 창의력을 키우거나 소통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어릴 때부터 춤추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춤추고 놀며 배울 수 있는 임프로브 극장을 만들게 된거다.”

- 지금도 대관을 주로 하고 있나.

“고민이 많았다. 대관으로 손해는 보지 않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때마침 지난해 말 정부에서 위드코로나를 시행한다고 해 거기에 맞춰 대관을 중지하고 연극을 다시 하기로 결정했다.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이 즐거운 일을 하는 게 좋다.”

판타스틱씨어터 내부 모습/사진=정혜선


- 방금 임프라브(IMPROV)라고 했는데, 그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있다. 조금 쉽게 설명해달라.

“임프라브는 보통 연극과 똑같다. 다만 무대에 아무것도 없다. 정해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극을 하는 게 아니라서 배우들 역시 별다른 준비 없이 무대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관객에게 질문해 그날의 주제를 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 관객에게 아침에 일어나니 어떤 기분이었는지 물었을 때, 그분이 집에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고 답한다면 그 자리에서 ‘집에 있고 싶은 가을’이 주제가 된다. 주제가 정해지면 배우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고 아이디어가 먼저 떠오른 배우가 시작하면 다른 배우들도 거기에 따라 상황극을 시작한다. 모든 게 즉흥으로 이뤄지다 보니 때로는 틀리기도 한다. 그런 부분에서 코메디 요소가 많다.”

- 들어보니 암프라브 공연은 배우간의 합이 매우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떤가.

“맞다. 임프라브의 문화는 혼자 멋진 연기를 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파트너를 도와 함께 가는 데 있다. 사실 이 부분은 나의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도 경쟁을 외친다. 하물며 TV프로그램도 대부분 경쟁 프로그램이다. 나는 이 임프라브를 통해 같이 가는 문화를 확산시켜 사회를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다.”

- 그럼 지금 판타스틱씨어터는 임프라브 공연을 하는데 주로 활용되고 있는 건가.

“이 공간은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임프라브 스탠드업 코메디 같은 예술장르를 기반으로 리더십을 키우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고 있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여기는 부엌이고, 나는 다양한 요리 기술을 가진 요리사다. 이곳을 찾은 분이 직장생활에서의 리더십이나 소통과 관련된 워크샵을 하고 싶다면 그 주제에 맞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강의가 아닌 몸을 움직이면서 하게 되는 게 특징이다. 이 공간의 또 다른 목적은 즉흥 공연이다. 즉흥 공연이다 보니 그에 따른 연습은 못하지만 훈련은 진행한다. 훈련은 주로 즉흥연기를 위한 창의적인 부분으로 이뤄진다.”

- 임프라브 공연을 하는 배우들은 모두 판타스틱씨어터 소속인가.

“그렇지 않다. 공연을 할 때마다 모여서 진행하게 된다. 일반인들이 배우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떨 때는 관객 중에서 그날 배우 역할을 할 분을 뽑아 극을 진행하기도 한다.”

- 찾아보니 공연 일정이 별도로 공지돼 있지는 않더라. 어떤 분들이 공연을 보러오는지 궁금하다.

“공연을 별도로 홍보하지 않다 보니 관객의 절반 이상이 알아서 찾아오는 분들이다. 배우의 지인들도 있고, 소개를 통해서 오기도 한다. 공연은 목요일, 금요일, 일요일 이렇게 일주일에 세 번 있다. 일요일에는 한국팀과 영어팀으로 나눠 두 번 공연한다.”

- 최근에 한 연극은 어떤 내용이었나.

“음…. 요즘엔 기업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한다. 예를 들어 연말이라 부하직원을 평가해야 하는데, 처음이라 어려워하는 분이라면 즉흥으로 그 연기를 해 본다. 또,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데 홍콩에 있는 상사와 미팅을 해야 하는 데 처음이라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를 통해 그 연습을 미리 해 보는 식이다. 한마디로 롤 플레이를 하는 거다.”

- 금융권에서 오래 일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 직업에 대한 이미지 때문인지 연극 배우와 연결이 잘 안된다. 원래부터 연극을 좋아했나.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수줍음이 많았다. 당시 선생님이 연극을 권해줬다. 그때 배우로서 연극을 처음 해봤다. 대학교를 미국에서 다녔는데, 거기는 3학년이 돼서야 전공을 정한다. 2학년까지만 해도 음악이 좋아 음악을 전공하리라 마음먹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했다. 나도 경험을 통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돼 결국 경제를 선택했다. 그리고 졸업 후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에 진출하게 됐다.”

사진=정혜선


-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없었나.

“트레이더로서의 삶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후회는 안했다.”

- 그럼 인생 2막에 연극배우로서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나.

“인생 2막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지만, 뚜렷하게 할 일을 정해놓진 않았다. 임원이 되면 회사에서 코칭 멘토를 붙여준다. 그분의 도움을 받으면서, 코칭에 관심이 생겨 직접 배우기도 했다.”

- 임프라브 공연을 접한 건 처음 접한 건 언제였나.

“내가 연극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한 친구가 임프라브를 해보라고 권하더라. 그렇게 ‘서울시티 임프라브’를 찾아갔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임프라브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휴가를 다 끌어 모아 5주 휴가를 냈다. 직장인으로서 5주를 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이라 강행했다. 그 길로 미국 시카고에 있는 코메디 사관학교라 불리는 ‘임프라브 올림픽’이라는 곳에서 수업을 들었다.”

- 인생 1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2막을 시작했는데, 어려움이 곳곳에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이유가 있다면.

“이 일을 하는 이유가 유명해지기 위해서도,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도 아니다. 이 일을 하는 자체가 너무 즐겁고 재미있어서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듯하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재미있고, 연극을 할 때 재미있고, 끝나고 나서 사람들과 함께 할 때도 즐겁다. 그냥 이일 자체가 나에겐 즐거움이다.”

- 이제 인생 2막을 준비하거나, 인생 2막을 시작한 분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음...뻔한 조언은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새해에 다짐한 3S를 함께 공유하고 싶다. 먼저 잘자는 거다. 잘 자야 몸이 건강할 수 있다. 다음은 웃음이다. 그날 얼마나 잘 살았는지를 알려면 그날 몇 번 웃었는지를 생각하면 된다. 마지막은 심플이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간단하게 생각하며 생활하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 이 세 가지만 잘 지켜도 인생 후반 잘사는 게 아닌가 싶다.”
정혜선 기자
doer01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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