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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한 '10년 약속' 지킨 키다리 아저씨의 마지막 성금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0차례 걸쳐 10억여원 기부

"나누는 행복 배우며 감사했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건넨 기부 수표와 메모. /사진 제공=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난 2012년부터 매년 대구 지역 어려운 이웃을 위해 거액을 기부한 ‘키다리 아저씨’가 마지막 익명 기부금을 내놓았다.

23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전날 이 익명의 기부자는 모금회에 전화를 걸어와 “시간이 되면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청했고 부인과 함께 나타난 그는 모금회 직원에게 5,004만 원짜리 수표와 메모지가 든 봉투를 건넸다. 그는 메모에서 “이번으로 익명 기부는 그만둘까 한다. 저와의 약속 10년이 됐다”며 익명 기부를 마무리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어 그는 “함께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많은 분이 참여해주시기 바란다”며 “나누는 즐거움과 행복함을 많이 느끼고, 배우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적었다. 메모와 함께 나눔을 실천하게 된 사연도 밝혔다.

그는 경북에서 태어나 1960년대 학업을 위해 대구로 왔지만 아버지를 잃고 일찍 가장이 돼 생업을 위해 직장을 다녔다. 결혼 후 단칸방에서 가정을 꾸리고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하면서도 수익의 3분의 1을 소외된 이웃과 나누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작은 회사를 경영하며 위기를 겪을 때마다 기부 중단을 권유하는 직원이 있었지만 그는 처음부터 수익 일부분을 떼어놓고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나눔을 이어왔다.

2012년 1월 처음 대구공동모금회를 찾아 익명으로 1억 원을 전달하면서 그는 ‘10년 동안 익명 기부’를 자신과의 약속으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해 12월 그가 다시 1억 2,000만여 원을 기부하자 대구공동모금회 직원들은 키다리 아저씨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2018년까지 매년 12월이면 어김없이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나 1억 2,000만여 원씩을 전했다. 지난해 12월에는 2,000만여 원을 전달했다. 메모에는 “나누다 보니 적어서 미안하다”고 적혀 있었다.

키다리 아저씨는 올해 5,000만 원을 끝으로 익명 기부를 마무리했다. 지금까지 열 차례에 걸쳐 기부한 성금은 10억 3,500만여 원에 이른다.

부인은 “첫 번째와 두 번째로 기부할 때는 남편이 키다리 아저씨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며 “어느 날 신문에 난 필체를 보고 남편임을 짐작해 물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자녀들도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손자 또한 할아버지를 닮아 일상생활에서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선다고 키다리 아저씨 부부는 전했다.

그는 마지막 익명 기부를 하며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앞으로 더 많은 키다리 아저씨가 탄생해 함께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대구=손성락기자 ssr@

손성락 기자
ss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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