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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통해 '또 다른 나' 찾다···시니어 극단 '액시'

'뭐라도학교' 시니어 극단…6개월간 맹연습

"경험 많은 시니어, 표현 풍부하고 여유로워"


“무대가 출렁여야죠. 죽어있는 공간이 있으면 안 돼요.”

“동작 끝맺음은 확실하게 합시다.”

지난달 31일, 수원시 팔달구의 수원글로벌평생학습관 대강당에서는 시니어 극단 ‘액시’가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었다. 시니어들은 감독의 지휘 아래 준비된 의상을 차려입고, 동선을 맞추며 각자의 역할에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이번 연극에는 전직 마술사, 성우, 문해교육 강사 등 배경이 서로 다른 시니어 7명이 무대에 섰다. 지난 5월, 봄에 시작한 프로젝트가 매주 4시간씩의 맹연습을 거치고 가을이 돼서야 앨리스 게르스텐버그의 ‘The Pot Boiler’를 각색한 ‘끝내주는 극작가’가 무대에 올랐다.

시니어 극단 ‘액시’가 마지막 리허설을 하고 있다. / 정예지 기자


“(무대에 서는 게) 두렵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캐릭터는 또 다른 나야, 무대에서 나를 표현하는 거야’라고 생각했죠.” 극 중에서 미스 아이보리역을 맡은 강부신(69) 씨는 첫 무대에 대해 이렇게 소회를 말했다.

이들을 연극으로 이끈 건 ‘뭐라도 학교’. 뭐라도 학교는 2014년 경기 수원 지역의 은퇴한 50~60대가 결성한 모임이다. 이름처럼 ‘뭐라도’ 배우고, 나누고, 즐기고, 행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경험과 지식이 있다면 누구나 클래스를 열 수 있는 학습공동체이기도 하다. 팝송 부르기, 스마트 폰 활용 교육 등에 이어 2020년 연극 수업이 시작됐다. 매년 새로운 기수를 선발해 발성과 동작, 무대 문법 등 시니어가 연극을 즐길 수 있도록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쳤다. 이정래 액시 예술감독은 액시는 ‘결과 중심적’이라기보다는 연습과 무대 자체를 즐기고,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 중심적’이라고 극단을 설명했다. 시니어가 연극을 통해 감정을 건강하게 풀어내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시니어 극단 ‘액시’가 마지막 리허설을 하고 있다. / 정예지 기자


“스타를 배출해 내는 게 목표는 아니에요. 심리적으로 성장하고, 내가 즐기기 위해 하는 연극이죠. 연극을 보러 온 가족이 ‘우리 할머니, 아빠에게 이런 모습도 있네’라고 느끼고요.”

연기 경험이 전혀 없던 강 씨를 무대로 이끈 것도 가족의 칭찬과 인정이다. “손주에게 구연동화를 들려주곤 했는데, 딸이 목소리 변신을 잘한다고 소질이 있다는 거예요. 내 안에 이런 게 있었구나 했는데, 연극 클래스가 열린다길래 손을 번쩍 들었죠.”

연극을 보러 온 관객은 20명가량. 남편과 손자, 친구로 구성된 관객인만큼 분위기는 일반 연극과 달랐다. 배우가 무대에서 동작과 대사를 할 때마다 모두 사진을 남기느라 바빴다. 할머니의 구연동화를 듣고 자란 손녀도 자리에 참석해 미스 아이보리로 변신한 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봤다.

시니어 극단 ‘액시’가 마지막 리허설을 하고 있다. / 정예지 기자


“처음에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데 하다 보면 다 필요 없어져요. 자기 자신만 중요해지죠. 성취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극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이 감독은 액시를 일본의 유명 시니어 극단 ‘사이타마 골드 시어터(Saitama Gold Theater)’처럼 키우는 게 목표다. 2006년 시작된 골드 시어터는 비록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1년 해산됐지만, 한때는 단원 모집 공고에 1000명이 넘게 몰릴 만큼 인기를 끌었다.

액시는 55세 이상, ‘심신이 건강’하다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연극 경험이 없어도 괜찮다. 시니어는 사회적으로 많은 경험을 쌓은 덕에 표현이 풍부하고 심리적으로 여유롭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만 있다면 극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정예지 기자
yeji@lifeju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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