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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원 출신이 만든 '퇴직학교', 퇴직자 소통창구로

대기업 임원의 인생 2막… 정경아 작가 인터뷰

신세계 퇴직 후 '퇴직일기' 출간 이어 유튜브까지

"퇴사 후 '민낯' 보게 돼…SNS, 브랜딩 연습해야"


“출근 안 해도 되잖아.”

현관문을 나서는 정경아(54)씨에게 남편이 말했다. 퇴직 통보를 받은 후 찾아온 첫 월요일. 회사에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씻고 출근하려던 차였다.

퇴직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유리천장을 깬 여성 임원’, ‘유일한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어도 피할 길이 없었다. 정 씨는 1990년 이랜드에 디자이너로 입사 후 신세계 그룹 상무까지 오른 뒤 2019년 퇴직했다. 귀농·귀촌, 취미 생활 등 인생 2막에 대한 별다른 꿈이 없었다. 그가 상상한 인생 2막은 ‘여전히 일하고 있는 사람’.

실제 퇴직 후의 삶은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 방황은 도서 ‘어느 대기업 임원의 퇴직 일기’ 출판과 퇴직 선배의 경험담을 듣는 유튜브 채널 ‘퇴직 학교’로 이어졌다. 아직 퇴직 후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좌충우돌하고 있다는 그를 지난 30일 서울 종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경아 작가가 지난 30일 서울 종로 사무실에서 퇴직 경험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 정예지 기자


“회사에서 나오면 커리어를 보여줄 도구가 없잖아요. 자격증을 쓸어 담듯이 땄죠.” 그는 사이버 대학에서 마케팅 과정을 수료하고, 이미지메이킹·프레젠테이션·성격유형검사·심리상담·미술치료 등 퇴직 전후 민간 자격증 5개를 차근차근 취득했다. 하지만 은퇴 후의 ‘삶’에 대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인생 2막을 일로만 준비한 거죠.” 그는 ‘처음 세상에 나가는 기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취미도 없었다. 학원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어떤 대화를 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퇴직 후의 삶은 자격증으로는 준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일까”…‘퇴직학교’로 이어져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다른 퇴직자와의 소통이었다. 퇴직 후의 삶에 적응하는데 마음고생이 따랐다. 이러다간 사회에서 숨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옮기는 것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용기 내 지난해 자신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풀기 시작했다.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다른 퇴직자들의 댓글로 오히려 응원과 위로를 받았다. ‘나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어딘가에 또 있구나’라는 생각만으로 힘이 났다.

그는 스스로에게 꼭 필요했던 것들을 만들고자 다짐했다. 블로그에 썼던 글을 모아 책 ‘어느 대기업 임원의 퇴직 일기’를 지난 6월 출판하고, 이어 다른 퇴직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유튜브 채널 ‘퇴직 학교’를 지난 7월 개설했다. 퇴직 학교는 5일 기준, 구독자 6000명를 모았고, 첫 영상은 20만 회를 기록했다.



자기 브랜딩해보길..그 시작은 SNS

“활자 세대다 보니 영상에 익숙하지 않아요. 회사 다닐 땐 SNS를 하지도 않았죠. 그런데 요즘은 소통하고 알리는 게 기본인 세상 같아요.” 그는 회사에서 벗어나면 자신의 ‘민낯’을 보게 된다며 퇴직을 앞둔 후배가 있다면 ‘SNS 활동’과 ‘자기 브랜딩’을 미리 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 브랜딩에 따라 퇴직 후 할 수 있는 일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에게 SNS는 트렌드를 파악하고, 신기술을 익힐 도구이자 퇴직자가 다른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챗GPT 등 새로운 것이 나오면 내 걸로 만드는 연습을 하는 게 좋아요. 나의 무기를 장착하는 거죠. 나만의 콘텐츠를 찾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걸 돋보이게 할 도구도 필수에요.” 그도 유튜브에 도전하기까지 3년의 세월이 걸렸다. “나와서 시작하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자기 계발 차원에서 미리 배워두면 좋죠. 내가 잘 훈련되어 있으면 회사에서도 역량 발휘할 수 있고, 은퇴해서도 끊김 없이 일할 수 있어요.”

퇴직자의 소통창구가 될 것

퇴직하고서도 세상에 나와 부딪히고, 소통하고 싶은 중장년은 많다. 퇴직 후의 경험이 각자 다르니 후배 퇴직자들에게 말해줄 수 있는 조언도 다르다. 하지만 또래 퇴직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고, 만나더라도 서로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는 더더욱 없다. 때로는 공감받는 것만으로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그의 목표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싶은 퇴직자의 소통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다. “어디 가서 얘기하고 싶을 때 선배 퇴직자의 위로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퇴직 학교를 통해 같이 이야기 나누고, 이 시대를 함께 힘내서 살아보고 싶어요.”

정예지 기자
yeji@lifeju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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