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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덜어낸 무대 ···'박상원' 지워 한 인간 담았죠"

[인터뷰]1인극 '콘트라바쓰' 주연 박상원

오케스트라 콘트라베이스 연주자役

맨뒷줄에 위치해 관객 주목 못 받아

소외된 존재의 고독·간절함 녹여

러닝타임·텍스트·소품 줄여 재연

더 넓은 연극적인 상상력 더했죠

1인극 ‘콘트라바쓰’에서 열연중인 배우 박상원이 지난 10일 서울 압구정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성형주기자


텅 빈 무대 위엔 남자와 콘트라베이스 단 둘 뿐이다. 객석을 향해 경사진 사각의 공간이 외부와는 단절된 외딴 섬만 같다. 이 고요의 공간을 하나둘 채워나가는 것은 묵직한 현악의 선율, 그리고 이 악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알리려는 한 남자의 고독한 투쟁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건만 왜 관객은 그 가치를 모르는가, 아니 알려 하지 않는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토해내는 이 악기의 매력과 의미는 오케스트라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덩치 큰 현악기만의 것이 아닌, 세상을 살아내며 인정받고 싶은 평범한 누군가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향수’, ‘좀머씨 이야기’를 쓴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에서 20㎏의 현악기와 90분의 여정을 끌어가는 배우 박상원(사진)을 서울 압구정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연극 ‘콘트라바쓰’ 공연 장면/박앤남공연제작소


박상원과 ‘소외된 존재’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드라마 ‘인간시장’부터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으로 1980~90년대를 주름잡은 흥행 배우부터 국내 대표 예술대학의 교수까지, 그가 써내려 온 이력은 오케스트라로 치면 가장 주목받는 맨 앞줄 악기이거나 아예 전면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에 가깝다. 하지만 박상원은 “누구나 자기 환경에서 콘트라바쓰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며 “오케스트라 둘째 줄은 첫 줄에 못 섰다는 감정, 또 앞줄에 있는 이는 그 환경이 주는 위기감과 고독함, 두려움을 느끼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나 역시 그런 지점에 있어 늘 위기의식 같은 것을 지닌 채 살아왔다”고 털어놨다.

지난 7일 개막한 공연은 2020년 초연에 이은 두 번째 시즌이다. 텍스트를 새롭게 구성해 러닝 타임을 기존 110분에서 90분으로 줄이고, 무대 위에서 배우가 의지할 수 있는 장치는 악기만 남긴 채 모두 지웠다. “초연 때는 박상원이 보이면 몰입에 방해될 것 같아서 ‘박상원 지우기’에 집중했어요. 이번에는 무대 위 인물은 한 명의 인간일 뿐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담으려 했습니다.” 박상원은 특색 없는 흑백 의상에 짧고 평범한 머리 스타일로 등장한다. 대신 비스듬히 기울고 비뚤어진 사각의 무대와 그 위에 선 한 인물이 만들어내는 미장센이 작품의 메시지를 한층 선명하게 드러낸다. 박상원은 “지난번엔 방대한 스크립트에 집중하다 보니 관객이 페이소스를 느낄만한 공간이 부족했다”며 “과감하게 덜어내고 여백을 둬 연극적 상상력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연극 ‘콘트라바쓰’ 공연 장면/박앤남공연제작소


콘트라바쓰는 데뷔 41년 만에 처음 도전한 모노드라마다. 그는 “연기 인생에서 1인 극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질문을 던진 뒤 “내가 볼 땐 0.01%도 안 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만큼 배우 홀로 일정 시간의 무대를 빈틈없이 끌어가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우연히 만난 이 작품은 그의 도전 의식에 불을 당겼다. “처지고 좁아진 어깨, 간절함… 주인공에게 아스라하게 정이 가더군요. 그 인물이 찾고자 하는 시선 끝에서 희망이 보이기도 했고요.”

1인극 ‘콘트라바쓰’에서 열연중인 배우 박상원이 지난 10일 서울 압구정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성형주기자


그는 최근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에 임명돼 그의 화려한 이력에 묵직한 한 줄을 더 보탰다. ‘유명인이라는 상징성에 그칠 것’이라는 일각의 편견에 그는 이렇게 맞선다. “이름만 걸치는 것은 스스로 못 견뎌요. 맡은 바를 넘어서는 게 내 자존심이자 더 중요한 자존감이거든요.” 자신을 ‘서울 시민이자,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단체와 지원받는 단체 양쪽에 소속된 사람’이라고 설명한 그는 “내가 바지런하게 잘하면 굉장히 입체적으로 이사장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그 일환으로 팬데믹을 준비 시간으로 삼아 재단이 주도하는 문화 축제를 광폭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우리 문화예술이 세계로 확장하는 시기인 만큼 전통과 현대, 다양한 장르가 역동적으로 얽힌 용광로로서의 축제가 나와야 합니다.”

그의 2022년 일정은 이미 꽉 찼다. 콘트라바쓰 공연이 끝나면 3~9월은 주말 드라마에 출연한다. 이르면 올 연말에는 몇 년 전부터 준비해 온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언제 쉬느냐’고 묻자 유쾌한 웃음과 함께 “이런 재밌는 일이 어디 있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작업을 향한 열정을 이 말로 대신했다. “한 사람의 생이 다 하면 도서관이 하나 사라지는 것과 같대요. 이 말에 딱 들어맞는, (사라지면) 더 아까운 누군가가 되고 싶어요. 제자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건강한 욕심’이죠.”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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