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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게 큰 차이 만든다” 휴대폰에 메모 한가득

[대한민국 명장을 찾아서] 정광미 대도도금 대표

고2 때부터 도금만 '42년 한 우물'

1999년엔 친형과 함께 회사 설립

선택도금기술·스팀 탈수기 등 특허

'서울에도 깨끗한 공장 세우자'

100억 투자 스마트 공장 설립

"사소한 것 쌓여 최상 제품 완성"

정광미 대도도금 대표가 도금 작업에 사용하고 있는 자동화 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간절하지 않으면 꿈도 꾸지 마라’ ‘사전 테스트, 양산 전 장비 제품, 구성품에 대한 점검’ ‘메이크 숍 도메인 먼저 선정할 것’…. 휴대폰 메모장을 열자 글들이 주르륵 뜬다. 인생 얘기부터 도금 기술 관련 내용까지 한두 개가 아니다. 지난 2015년 대한민국 도금 명장이 된 정광미(56) 대도도금 공동대표의 휴대폰 속 메모장은 이러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는 직원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작은 것이 중요합니다.”

27일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만난 정 대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큰 것은 작고 사소한 것들이 쌓여 만들어 낸 것입니다. 남들은 도금을 할 때 세척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작은 것의 소중함은 그를 메모광으로 만들었다. 기억력이 나쁘다고 생각했기에 아주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글로 남겼다. 한때 서류철로 몇십 개에 달하기도 했다. 큰불로 모두 사라진 후에는 휴대폰이 그 역할을 떠안았다. 어찌나 많은지 “휴대폰 메모리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메모”라고 말할 정도다.

정광미 대도도금 대표가 사무실에 걸려 있는 특허증의 내용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다.


장신구를 선택적으로 도금하는 기술, 수지 재활용 코팅 장치 등 정 대표가 보유한 특허들은 모두 평소 아쉬웠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메모로 남긴 결과물이다. 특히 건조 과정에서 사용되는 ‘스팀 탈수기’는 중국·베트남을 비롯한 전 세계 도금 공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의외로 특허로 이득을 본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스팀 탈수기의 경우 건조 과정에서 불량이 많이 나와 고민하다 탈수기를 응용해 만든 것”이라며 “도금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 특허를 풀었다”고 설명했다.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정 대표가 도금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혼자 8남매를 키우던 어머니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큰형이 다니던 경기도 성남의 한 도금 공장에 취업을 했다. 전체 직원이 불과 5명. 덕분에 연마부터 세척·도금·코팅까지 전체 공정을 배울 수 있었다. 1999년에는 작은형인 정광수 공동대표와 지금의 회사를 세웠다. 이렇게 도금에 바친 기간이 42년에 달한다.

정광미 대도도금 대표가 서울 성수동 공장에서 도금 후 세척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금 공장에서 평생을 보낸 그가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작업 환경 개선이다. 도금 하면 고약한 화학 약품 냄새와 더러운 작업장을 떠올리는 보통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한다. 3년간 100억 원을 투자해 올 초 서울에서 가장 핫한 동네에 전 공정을 자동화한 최신 스마트공장을 지은 것도, 남들보다 처리 용량이 2배 이상 많은 폐수 처리 시설과 공기 정화 설비를 갖춘 것도 이 때문이다. 덕분에 전체 이 회사의 직원 45명 중 80%가량이 30대 미만으로 채워졌다. 정 대표는 “서울에도 깨끗한 도금 공장이 하나쯤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다”며 “사업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좋은 환경을 조성해 젊은이를 비롯한 후배들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 모든 것을 투자했다”고 덧붙였다.

주변 주민들을 위한 공간도 만들었다. 월 1,000만 원에 달하는 1개 층 임대료를 포기하고 1층을 일반인을 위한 카페와 가방·의류 등을 파는 매장으로 바꾸고 교육실을 갖췄다. 그는 “도금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공간이 하나쯤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그 이유를 밝혔다.

정광미 대도도금 대표


정 대표는 요즘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세종콜렉션이라는 자체 브랜드 액세서리 업체를 설립하고 ‘파프(faf)’라는 가방 브랜드를 선보인 것이다. 그는 “도금 하청만 하다 보니 경쟁력이 없더라”며 “일반인이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시도”라고 설립 이유를 밝혔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거침없이 ‘지식과 기술의 접목’을 내밀었다. 특히 지금도 제대로 기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별로 없는 도금 현장에서 열심히 일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 대표는 “기술이나 지식 어느 한 가지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며 “기술을 가지고 지식을 이에 접목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누구나 명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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