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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가구는 기본에 충실···환경 고려해 만들죠"

7년 경력 '여자 목수' 함혜주 이리히스튜디오 대표

지옥 같았던 직장 생활 버리고

29살에야 비로소 목공 세계로

책상에선 못느낀 생동감 얻어

자급자족 가능한 것 최대 장점

필요한 만큼 스스로 제작 사용

‘여자 목수’ 함혜주 이리히스튜디오 대표가 가구를 만들기 위해 제재목을 다듬고 있다.


작업실 안이 온통 나무 천지다. 냉방 기기와 철제 앵글로 만든 책장, 목공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형 전기톱 정도를 빼면 목재가 아닌 것이 없다. 작업대도, 의자도 심지어 벽도 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뿐 아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든 이는 단 한 사람이다. 심지어 목재를 깎고 다듬을 때 쓰는 조각까지 손수 제작했다. 함혜주(36) 이리히스튜디오 대표가 다시 보이는 이유다.

2016년 함혜주 대표를 목수의 길로 이끌었던 첫 작품 ‘의식의 램프’.


19일 대전광역시 갈마동에서 만난 경력 7년의 ‘여자 목수’ 함 대표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성신여대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의 전공은 산업디자인이었다. 일본 유학 때는 유리 공예를 배웠고 국내로 돌아와 취업했을 때는 시각디자인을 다뤘다. 나무를 다루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29세 때 ‘의식의 램프’라는 작품을 선보이면서부터다.

“제 화두는 내가 내 삶의 소리를 얼마나 마주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어요.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다 보니 직장에 다니는 일이 지옥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나무 가구를 봤지요. 도대체 나무는 어떤 성질을 갖고 있고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궁금해지더군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함 대표는 목수 일을 좋아한다. 몸을 쓰기 때문이다. 육체노동을 하면 근육이 생기고 몸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사무실에서 책상머리에 앉아 일할 때는 느낄 수 없는 생동감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목공 일에는 힘이 많이 들어간다. 큰 식탁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목을 널빤지 모양으로 자른 제재목 3개를 이어 붙인 후 말려야 하고 여기에 다듬기, 오일 마감, 본드 조립, 짜임까지 하면 보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당연히 근육이 붙을 수밖에 없다.

함혜주 대표가 오리 모양의 목공예품을 만들기 위해 조각도를 이용해 나무를 다듬고 있다.


더 중요한 이유도 있다.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굳이 다이소 같은 곳에 가지 않고도 어머니에게 도마를 만들어 줄 수 있고 친구들에게 조각을 선물할 수 있는 직업이 목수라는 것이다. 그는 “돈에 얽매여 사는 것이 싫었다. 자본에 의지하기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며 “제 꿈은 숟가락 만드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고 소탈하게 말했다.

함혜주 대표가 뒷동산에서 주워온 목재로 만든 새 모양의 작품.


돈에 기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살겠다는 의지는 그의 생활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함 대표는 하루 종일 ‘민낯’으로 지낸다. 인터뷰를 한다고 했을 때 조금이라도 화장을 해볼까 했지만 그마저도 포기했다. 아무리 찾아도 아이섀도 같은 기초 화장품조차 찾을 수 없어서라고 했다. 당연히 명품이나 고급 차 같은 것에 대한 욕심도 없다. ‘정 필요하면 만들어 쓰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의 사무실에 가면 ‘새’를 묘사한 작품이 있다. 그는 “이 작품의 재료는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이 아니라 뒷동산을 산책하던 중 우연히 벌목하고 남은 나무 밑동을 발견해 만든 것”이라며 “주변에 있는 것을 잘 활용한다면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 비싼 수입목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했다.

‘필요한 만큼 스스로’는 그의 목공 철학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함 대표에게 좋은 가구와 소품이란 기본에 충실한 것이다. 식탁은 음식을 먹기 편하고 의자는 앉아 편히 쉴 수 있으며 작업대는 일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목적을 만족하면 된다. 시선을 끌기 위한 것들, 화려한 것들은 그다음 차례가 돼야 한다. 그는 “된장찌개를 끓이는데 부대찌개나 김치찌개 맛이 나면 안 되듯이 작품도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며 “화려함이 먼저 나오면 결코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함혜주 대표의 작품 ‘인다라망’. 인다라망은 ‘인드라의 그물’이라는 뜻을 가진 불교 용어로 부처가 온 세상에 서로 연결돼 머물고 있음을 상징한다.


함 대표는 요즘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환경을 아는 목수’가 그것이다. 목수 일을 하다 보면 엄청나게 많은 톱밥이 나온다. 50ℓ짜리 재활용 봉투 4개를 채우고도 남는다. 그냥 버리면 모두 쓰레기다. 가구도 수명을 다하면 버려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나무만 있다면 자연으로 쉽게 돌아가지만 페인트를 칠하고 레진을 씌운다면 썩지도 않은 채 지구에 남게 된다. 현세대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미래 세대에는 치명적인 결과로 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그는 “대학에서는 마케팅을 어떻게 하고 단가를 어떻게 할 것인지만 배웠지 버려진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배우지 못했다”며 “지금은 톱밥을 농장에 보내고 레진은 주문이 들어와도 만들지 않는 등 나름대로 해법을 배워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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