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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각에서 시작된 ‘창직’···“원두처럼 쌀도 골라 먹는 시대에 꼭 필요한 직업”

[라이프점프×이정원의 창직 탐구_15편] 김동규 쌀 큐레이터

마을 카페 매니저로 일하며, 도시농업에 관심 갖게 된 게 창직의 시작

생산자와 소비자, 도시와 농촌 연결하는 사회적 역할 수행

이미지=최정문


맛있는 밥 전문가인 쌀 큐레이터는 쌀을 품종별로 소개하고 사회 및 문화적으로 더 의미 있고 재미있게 소비할 수 있도록 추천하는 직업이다. 쌀도 커피나 와인처럼 나만의 취향을 찾아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생산자와 소비자, 도시와 농촌을 연락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요리사나 예술가 등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 문화를 창조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김동규 씨는 농사를 짓거나 기업을 운영한 경험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시민단체에서 활동했고, 지난 2013년 ‘카페 봄봄’이라는 커뮤니티 마을 카페 매니저로 일하다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의 쌀과 밥 문화에 대한 강의를 듣고 ‘한국 사람들이 밥을 참 맛없게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갓 도정한 쌀과 다양한 품종의 쌀을 쉽게 구입해 맛있는 밥을 먹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직접 방법을 찾기로 했다. 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에 관심이 있는 도시농부, 자영업자, 지역주민들과 함께 1년 동안 공부하며 착실히 준비해 나갔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의 품종이 200여 가지가 넘고, 품종에 따라 식감, 향미, 어울리는 음식들도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본격적인 시장조사를 위해 일본 도쿄에 유명한 쌀가게인 ‘아코메야’ 탐방을 다녀오기도 했다. 규모와 구색을 자랑하는 아코메야와는 달리 그는 맛있는 쌀을 알리기 위한 동네의 작은 정미소 콘셉트를 구상하고, 지난 2017년 11월 ‘동네정미소’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쌀 큐레이터 시장 개척에 첫발을 내디뎠다.

사진=이정원


◇ 유기농 이유식 등 쌀 소비 영역 다양해져

동네정미소 1호점을 오픈했지만, 작은 규모의 매장에 셰프와 매니저를 고용하면서 사업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픈 시기가 겨울이라는 점도 있었고 매장이 동네 골목 안에 있었기에 입소문이 나서 자리를 잡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직 동네정미소의 정체성과 시그니처 상품도 확정하지 못한 채 쌀 큐레이터의 역할인 쌀 도정과 유통, 다양한 상품 구성, 특색 있는 밥상 레시피 등의 일을 할수록 숙제와 고민도 많아졌다. 그러던 중 지난 2018년 명절 선물세트를 기획, 영업, 배송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됐다.

창직 초기에는 언론과 전문가들의 관심이 큰 도움이 됐다. 서장훈과 정형돈이 진행하는 올리브TV에도 방영되고, 다양한 매체에서 동네정비소와 쌀 큐레이터를 소개했다. 그 덕분에 도시농업 분야, 음식 분야, 유통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분이 탐방을 오기도 했다. 하지만 매출과 영업이익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었다. 부족한 자금 마련을 위해 첫 번째 크라우드펀딩 5,000만원에 도전했는데, 6,200만원이 넘는 금액으로 1차 펀딩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2호점은 전통주와 쌀을 결합하는 콘셉트로 지난 2018년 9월 문을 열었다. 이후 골목 쌀 축제를 열고, 전통주 강좌도 병행하면서 기반을 다져나갔다.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서울시나 경기도 등 지자체와 협업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고민하며 로컬푸드를 넘어 푸드 커뮤니티 매장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또한, 쌀 큐레이터를 소개하기 위해 서울시50플러스센터와 함께 교육 과정을 운영해 한국인의 주식인 쌀에 대한 인문학 강의 진행 및 50플러스 세대에게 더 건강하고 풍요로운 식생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이정원


쌀 큐레이터 창직 당시 김동규 씨는 사업 경험이 없어 자금 마련, 회사 설립, 매장선정, 셰프 고용, 도정기 구매 등 모든 것이 새로운 일이었다. 공부하고 부딪히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고 좌절하기도 많이 했다. 하지만 농부들에게 제대로 된 쌀값과 자부심을 주고 소비자에게는 적정가격과 믿을 수 있는 쌀과 밥을 제공한다면 충분히 가능성과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쌀과 밥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김 씨는 정부와 지자체 협업 모델을 통해 안정적인 쌀 큐레이터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줄고 있지만 다양한 쌀 가공품, 쌀 관련 요리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 추세다. 유기농 이유식, 청소년을 위한 쌀 레시피, 노인과 환자를 위한 건강식 등 쌀 소비 영역이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쌀도 커피나 와인처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즐기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서양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 동남아 등 주요 쌀 소비국에서도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 일본의 아코메야, 대만의 그린핸즈도 유의미한 사업모델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에서도 점차 편의점이나 커피전문점처럼 트렌디한 비즈니스모델로서 쌀 전문 편집숍이 각광받게 될 것이다. 이에 쌀 큐레이터 역시 생산자와 소비자, 자영업자, 음식 전문가, 예술가들이 함께 만드는 상생의 사회적 경제 모델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한 음식 평론가가 ‘뚜껑 덮은 스테인리스 공기밥’에 대해 혹평을 내놓은 적이 있다. 이는 스테인리스 공깃밥에 대한 고민과 함께 맛있는 밥에 대한 관심도 함께 불러일으켰다. 쌀 큐레이터 김동규 씨 역시 우연한 기회로 “한국인은 쌀을 참 맛없게 먹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데서 창직 모델이 시작됐다.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들도 정작 국내산 쌀 품종만 200종이 넘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게다가 ‘맛있는 밥’에 대해 고민을 한 사람은 더욱 드물다. 김 씨는 한국인 식생활의 중심인 쌀을 품종별로 맛과 특징을 제시해 취향에 맞는 쌀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믹스커피가 원두커피로 대체돼 이제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는 마니아들까지 생겨나며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되었듯이 쌀 큐레이터도 쌀을 입맛에 맞춰 골라 먹는 시대를 선도하는 직업이 될 것이다. 한국인의 밥상에 매일 오르는 쌀밥 한 공기에서도 창직 모델이 시작된 것처럼, 관심만 가진다면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창직 모델을 찾을 수 있다.
이정원 기자
doer01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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