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 따르면 임신과 출산, 육아 및 가족 돌봄 등을 이유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의 수는 2019년 기준 169만명에 달한다. 놀랍게도 이 중 구직 의사가 전혀 없는 경우는 0.6%에 그친다. 99%가 넘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다시 일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모 음료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엄마라는 경력이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현실 속에 이들의 다양한 전문성과 잠재력은 사회와 무관하거나 동떨어져있다고 치부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단녀’라는 세 글자에 갇힌 편견을 깨고 작지만 커다란 성장을 일궈내는 이들이 있다.

‘내일의 내:일’은 일터 밖에서 보낸 시간을 경력단절이 아닌 ‘경력보유’라는 이름으로 재정의하고, 스스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다시 누군가의 동료로 돌아온 여성들의 성장 이야기이다.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것으로 간절히 내 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건네고자 한다.

Intro.

‘꿈은 단절되지 않는다’

지난해 한 맥주 브랜드가 진행한 ‘Become an Icon’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된 광고다. 해당 광고의 카피라이터이기도 한 김진아씨는 그의 책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지금 각성한 10대, 20대 여성 중 얼마나 많은 국회의원, 임원이 나올까?

상상만 해도 신난다. 그들이 그 자리에 갈 때까지 내 전문성을 포기하지 않고 진도를 조금이라도 나가는 것. 이건 앞서가는 세대로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비단 여성계, 육아와 병행하기 좋은 여성 친화적 일자리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이 자기 자리와 성과를 이어가야 한다. 내 유전자를 잇는 것만큼 중요한 일일지 모른다. 우리 단절되지 말자.’

이 메시지에 대한 응답처럼, 안효경님 역시 더 이상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고 더 유능하게 일하고 싶은 커리어 욕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모 지원 전문기관인 ‘자람패밀리’에 근무하는 그를 성수동에서 만났다.

-사람마다 경력 공백의 시간동안 느끼는 감정이 저마다 다를 텐데요, 효경님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임신, 출산, 육아 진짜 힘들다고 왜 아무도 얘기 안 해줬어요? (웃음) 사실 인생을 살면서 일하지 않는 저의 모습을 그려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회사 취직해야지! 딱 여기까지만 있었던거죠. 학생 때나 직장인 때나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따라 성취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런 개념이 사라지니까 공허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처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을 무렵엔, ‘나도 자유시간이 필요해!’라 고 생각했다가도 막상 아이가 등원을 하면 정말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 것도 안 먹고, 핸드폰만 보며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는 날들이 반복되었죠. 그런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비생산적이라고 느꼈지만, 또 다시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을 견뎌내는 시간이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제가 일에 쓰던 모든 에너지를 남편과 아이에게 쏟게 되면서 관계가 건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남편은 퇴근하고 와서 또 다른 까다로운 상사를 만나는 기분이었을지도 몰라요. 하루는 남편의 승진 소식을 들었는데, 말로는 축하한다고 해주었지만 그게 순도 100% 마음은 아니었어요. 제가 일을 그만두기 전에 남편과 같은 회사를 다녔거든요. ‘나도 한때는 남편 못지 않게 일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오늘도 침대에 누워만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런 생각들이 먼저 떠오른거죠. 부모님으로부터 어느 정도 양육 도움을 받으면서 일을 계속하고 있는 친구들 소식에 질투가 나기도 했고요. 저라는 사람에게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일매일 실감하는 3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럼 다시 일을 시작한 요즘은 확실히 더 행복감을 느끼시나요?

“행복감보다는 생기 있다고 표현하는 쪽이 맞을 것 같아요. 일을 하지 않을 때 완전히 메말라 있었다면, 요즘은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보습이 된 느낌이랄까요. (웃음) 저희 가족에게는 확실히 평화의 시기가 찾아온 것 같고요. 유연근무제에 열려있는 조직이라 시간제로 일을 하며 아이의 등원과 하원을 직접 챙기는 것이 가능하거든요. 이전보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지만, 그 짧은 시간을 더 의미있게 활용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어요. 일터에서 힘들었을 남편의 모습도 다시금 이해하며 서로 공감하는 폭이 넓어졌고요. 서로 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기도 하고 조언을 주고받는 발전적인 관계가 되었죠. 남편과 아이에게만 날카롭게 꽂혀 있던 저의 시선이 다시 부드러워진거죠. 물론 다른 직장인들처럼 출근하기 싫은 날도 있긴 해요. 그럴 때면 제가 이 일을 얼마나 간절하게 원했었는지, 지금도 누군가는 이 기회를 얼마나 애타게 찾고 있을지, 그 소중함에 대해 생각한답니다.”

-노래 가사에도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하잖아요. 감정이 마구 소용돌이쳤던 그 시간이 효경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초반에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저는 경력단절이 제가 겪게 될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그게 무엇인지 아예 감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저희 부부가 오롯이 양육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잠시 미루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다시 일을 시작한 후에, 저와 비슷한 상황의 분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지난 3년의 시간, 제가 감당해야 했던 사회의 시선이 또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저 개인의 감정을 넘어서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고 싶은 제 안의 욕망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에요.

이런 생각들이 계쏙 꿈틀대다보니, 자연스럽게 여성과 일,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을 많아 찾아 읽게 되었는데, 한 모임에서 만난 분이 ‘이런 책을 읽는 엄마가 키우는 아들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되네요’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순간 저에게 어떤 책임감이 있는지도 깨달았죠. 저희 아이가 얼마 전까지 아빠만 일하는 사람으로 인식해왔다면, 요즘은 엄마가 노트북을 보는 모습에도 익숙해졌거든요. 본인도 서재 방으로 출근해야 한다고 말할 때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 유치원에서도 선생님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흉내를 내며, 본인 회사 이름을 알려준대요요. 그 이름이 매일 바뀌긴 하지만요. (웃음) 이제는 아빠 뿐 아니라 엄마도 똑같이 일을 하며 가계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먼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이 아이는 언젠가 배우자가 일하는 상황을 갈등없이 당연하게 느끼겠죠?

여전히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거창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지난 경력 공백의 시간을 거치면서 ‘여성의 일’ 이라는 주제는 필연적으로 관심이 갈 수 밖에 없고, 앞으로도 더 공부해보고 싶은 영역이에요.“

-그래서! ‘여성의 일’과 관련한 새로운 일을 벌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팟캐스트 말씀하시는거죠? 사실 그 시작은 ‘임팩트커리어 W’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동기분들과 흩어지기 싫었던 마음에서 비롯되었어요. 무언가 주제가 있어야 모임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아, 한 명씩 호스트가 되어 ‘이 달의 책’을 선정하여 읽고 나누는 북클럽을 시작했고, 이제 1년이 훌쩍 넘었거든요. 여유가 없는 날에는 맥주 한 캔 손에 쥐고 온라인으로 접속을 해서라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곤 했는데, 매번 그 내용들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너무 아깝더라고요. 저를 비롯하여 다들 깜깜한 경력 공백의 시간을 지나온 분들이잖아요. 누구 한 사람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 펼쳐진단 말이죠. 팟캐스트나 유튜브에 도전해보자고 몇 번을 농담처럼 주고 받다가, 다른 두 분과 의기투합하여 일단 녹음부터 시작했어요. 저희 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직 막막한 터널 안에 있는 분들에게 소소한 위로가 되길, 서서히 터널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는 분들에게는 그 고민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여줄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이제 겨우 첫 발을 내딛었는데,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서로를 통해 용기를 얻고, 지지를 얻고, 나아갈 방향을 찾는 모습을 상상하며 즐겁게 준비하고 있어요.”

-세 분의 수다에 폭풍 공감하는 분들이 정말 많을 것 같아요. 저 역시 너무 기대되고요. 앞으로는 더 많은 곳에서 여성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저희 인터뷰의 단골 질문! 요즘 효경님이 꿈꾸는 커리어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재 조직이 엄마, 부모, 가족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니, 일을 통해 성장하는 느낌이에요. 대표님과 이야기하는 중에 제 안의 고민의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고객으로 만난 엄마들과의 대화를 통해 힐링이 되기도 하고요. 이전에 경험하지 않았던 업무들을 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아요. 그래도 언젠가는 저만의 전문성을 더 뾰족하고 갖고 싶어요. 물론 더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겠죠. 아직 어떤 분야의 전문성인지까지 명확하게 정리하진 못했지만, 지난 시간 저의 경험과 앞으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누군가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이면 좋겠어요.”

Outro.

앞서 언급한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는 효경님이 속한 북클럽에서 함께 이야기 나눈 책이기도 하다. 아직 어린 아이의 등하원 시간을 지키고자 보다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시간제근무를 선택했지만, 그렇게 지금의 시기를 흘려보내기엔 하고싶은 일도 해야할 이야기도 많아 팟캐스트라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선택한 효경님. 앞으로 그가 어떻게 자신의 커리어 파이를 지키고 키워갈지 기대된다.

루트임팩트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를 일과 삶, 배움의 분야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경력보유여성이 일터로 돌아와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연한 일자리를 설계하는 ’임팩트커리어W‘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여러 체인지메이커 조직들과 함께 여성의 지속가능한 일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송예리 루트임팩트 매니저

박해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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