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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몰고 온 나비효과, 일감 잃은 골프선수들

골프장은 성업이라는데 선수들은 보릿고개

생활비 마련 위해 마이너스통장까지 써

문경준 프로 사진제공=KPGA

박상현 프로 사진제공=KPGA


전 세계 골프규칙을 관장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무섭게 확산하던 지난 3월, 라운드 중 지키면 좋을 몇 가지 권고 지침을 발표했다. 벙커를 고르게 만드는 고무래 대신 발이나 자신의 클럽을 사용하고 홀의 깃대는 항상 꽂은 채로 경기하는 등 사람 간 접촉을 최소화하라는 임시 가이드라인이었다. 애초에 골프는 동반자와 거의 접촉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R&A의 임시 지침까지 지키면 코로나19의 영향권에서 더 멀찍이 달아날 수 있다. 실제로 상당수 국내 골프장의 올봄 매출은 전년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증가했다. 해외 원정을 즐기던 골퍼들의 발길이 국내로 몰린 영향도 크다.

하지만 골프선수들의 표정은 골프장 업계의 분위기와 정반대다. 특히 남자 투어인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선수들은 보릿고개라 할 만큼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2018년 17개 대회였던 시즌 규모가 지난해 15개로 줄어든 데 이어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11개로 줄었다. 4월에 시작됐어야 할 시즌이 7월에나 개막한다. 세계 골프에서 아주 드물게 남자 투어보다 여자 투어가 훨씬 더 인기인 한국에서 남자 프로골퍼로 산다는 일은 생각보다 더 고된 일이다. 선수들은 이 사실을 이번 코로나 공백기를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아들 셋을 둔 문경준(38)은 “한국 남자 선수들은 회사와 계약해 스폰서가 생기는 경우도 많지 않다. 대부분의 선수가 대회 상금에만 의존해서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예년 같으면 4~5개 대회를 했어야 할 상황이라 현재 마이너스 통장을 쓰는 선수가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힘들겠지만 골프 선수들도 가족과의 외식을 두 번에서 한 번으로 줄이는 등 절약하면서 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대상(MVP) 수상자인 문경준처럼 정상급 선수들은 후원 기업에서 연봉 성격의 계약금이라도 받지만 KPGA 투어에는 그렇지 못한 선수들이 더 많다.

두 아들의 아빠인 2018년 상금왕 출신의 박상현(37)은 최근 이벤트대회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프로 들어 20년 넘게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중간에 어쩔 수 없이 휴게소에 들른 기분이다. 대회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는 그는 “직장 잃은 분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숙인 채 울먹였다. 기자회견 뒤 만난 박상현은 “어렵게 투어 출전권(시드)을 따고 올라온 친구들이 많은데 그렇게 들어간 직장이 없어진 것 아니냐. 안타까운 상황의 후배들을 생각하다가 한 번은 얘기하고 싶었다”며 “저는 이렇게 좋은 자리에 초대라도 받았지만 일자리가 없어 괴로워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KPGA 투어의 시즌 대회 수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절반 수준이다. 이 때문에 경쟁력 있는 남자 선수들은 KPGA 투어 출전권을 유지한 채 일본이나 아시안 투어 또는 유러피언 투어 출전권에 도전해 ‘투잡’ ‘스리잡’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투어가 멈추거나 발이 묶이면서 ‘멀티 시드’도 소용없는 상황이다. 유러피언 투어 시드를 보유한 문경준은 “유러피언 투어가 다음 달 영국에서의 6주 연속 대회를 시작으로 시즌을 재개한다고 하는데 갈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가서 2주 자가격리, 돌아오면 또 2주 격리를 해야 하고 현지에 가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국내에 머물면서 다음 달 있을 KPGA 투어 개막전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했다.

/양준호 miguel@
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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